출저 : http://cits.kr/ [ CITS ] - 소망의 샘터 - CITS (님)의 글.

남이(가명) 남(25세)


갑자기 잠을 자다가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찢고 발기고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어릴 때 술이 취해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는 무서운 아버지였다.

고등학생 때의 알코올 중독 자 아버지는 무서운 아빠가 아니라 천추에 수치스런 아버지였는데 지금 청년이 되어서의 알코올 중독 자 아버지는 수치 미움을 떠나 증오, 증오의 존재일 뿐이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한 밤중에 깨어 술이나 담배를 사오라고 윽박지르고 어머니를 개 패듯이 팬다.
술병이고 칼이고 닥치는 대로 던져 어머니를 병원에 실려 가게 한게 여러 번이다.
그럴 때마다 왜 저 아버지는 제어를 할 수 없고 고발을 할 수 없고 힘으로라도 제압할 수 없는가를 몇 번이고 외쳐본다.

만약 다른 남자가 저렇게 행패를 부린다면 내가 형무소를 갈지라도 어머니를 때리고 가구를 부수는 자를 죽여 버리기라도 할 텐데......,

법으로도 그렇게 하는 것은 정당방위가 아닌가?
그런데 왜? 저 아버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릴 때부터 맞으며 엄마의 양손을 꼭 잡고 어린 두 남매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밤새껏 떨어야 하는지 항상 그것이 아리송하였다.

아니 지금도 그것이 가장 궁금한 점이다.
남에게 할 수 있는 일이면 가족에게도 할 수 있어야 되고 남에게 할 수 없는 일이면 가족에게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는 남에게 할 수 없는 일을 가족에게 하고 있고 우리들은 남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아버지에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 그렇게 법을 정해 놓았다면 나는 그 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만일 그렇게 법을 정해 놓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원망할 것이다.

지금 이 나이면 인생의 전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정진해야 할 나이이다.
그런데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어떤 목적을 가져야 바른 것인지 설령 목적을 가졌다해도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또는 이루었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현재의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살면서 모든 삶의 의미가 불분명하다, 두렵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남이 다 가는 나이가 되어 군대에 갔다.
내 손에 들려진 총, 방아쇠를 아무데나 당기고 싶었던 때가 수도 없이 많았다.
특히 술이 취해 주정을 하는 자식들에게 말이다.

어쩌면 나의 정신 상태에 이미 큰 문제가 생겼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상태라면 사회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런데 제대를 하고 어머님의 권유로 기독교국제금주학교의 4주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는 고질적인 하나의 질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범주와 수치를 가히 잴 수 없는 악이라는 것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고 또 하나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병은 사회적인 공동 문제와 가족들의 공동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악이라는 것과 병이라는 것은 해결의 방책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회적 규범이나 윤리 이상의 차원에서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병이라고 하는 것은 전 가족과 그 병을 잘 아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치료한다면 고쳐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나의 내면의 세계에서부터 강하고 담대하고 정확하고 냉철한 의식으로 강화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다른 가족들도 같은 의미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알코올 중독 자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우리 가족들의 영향을 아버지가 받도록 하는 역전의 상황이 된 것이다.

세상을 알면서 처음으로 어머니 나 그리고 여동생이 안정을 찾고 평안을 찾은 것 같다.
특히 기독교 국제금주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나 보다 못한 이들을 향한 이타적 헌신 봉사 정신이야 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는 낙심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힘 있게 가족들을 돌보며 알코올 중독 아버지를 돌보며 기둥이 되어 살아가리라